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르 위고 (문단 편집) == 기타 == * 쾌활하고 호탕한 성격이었고 [[바람둥이]]로도 이름이 자자했다. 나이 80살 먹어서도 메이드들이나 여러 여성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동갑내기 친구인 [[알렉상드르 뒤마]]나 [[외젠프랑수아 비도크|명탐정 비독]]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위고가 사망했을 때 그를 기리기 위해서 파리의 모든 사창가가 하루동안 문을 닫았다. * 하지만 위고의 성욕에 대한 집착이, 첫째 아내 아델이 친한 친구이던 평론가 생트 뵈브(1804~1869)와 바람이 나서 야반도주하자 여성에 대한 증오가 생겨서 그랬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위고는 다른 여성들과 여러 관계를 맺었으나 자식은 아델에게 얻은 자식 밖에 없었다. (첫째 아이는 태어난지 3달 만에 사망.) 아델은 생트 뵈브와 사랑에 빠지자 가차없이 사랑을 찾아 떠났고[* 서류상으로는 평생 위고의 아내로 살았다.] 갓 태어난 막내딸 아델은 아내를 그리워한 위고가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후 위고는 자신이 쓴 연극 《뤼크레스 보르지아》에 나온 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사랑에 빠져 1833년부터 쥘리에트 드루에가 죽을 때까지 관계를 유지했다. 쥘리에트 드루에는 위고가 망명할 때도 동행했다. * 당시 엄청나게 오래 83살까지 살다보니 막내를 빼고 모든 자식과 아내 아델과 연인 드루에마저도 먼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는다. 드루에는 죽기 전에 편지로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을 곁에서 돌보고 싶어도 이젠 몸이 말을 안듣는군요. 먼저 가서 먼저 간 아이들과 같이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는 글을 남겨서 위고를 더 슬프게 했다. * 자녀들이 하나같이 비극적으로 사망했는데, 큰아들은 태어난지 3달만에 죽고, 둘째이던 큰딸 레오폴딘은 19살 나이에 남편과 함께 보트에 탔다가 돌풍으로 배가 뒤집혀 익사했다. 남편은 수영을 잘했으나 레오폴딘이 임신한 몸인데다 드레스로 인해 몸이 무거워서 가라앉자 그녀를 구하려고 6차례나 잠수를 반복하다 결국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나머지 두 자녀도 차례로 병으로 죽었기에, 위고가 죽을 당시 남은 건 막내딸인 아델 뿐이었다. 하지만 아델은 실연당한 뒤로 충격으로 23살 때 자살까지 기도했다. 겨우 목숨은 구했으나 [[실어증]]에 걸려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으며 그대로 65년을 살았다. 그마저도 1872년에는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43년은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샤를의 딸인 손녀 잔이 위고의 마지막을 돌봤고, 유언으로 잔에게 인사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 색정광이란 비난도 있던 위고지만, 자식들을 너무나도 아꼈기에 하나둘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하여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막내딸인 아델의 마음을 풀어보고자 다른 남자도 소개하고 산책이나 온갖 용하다는 의사에게 진찰도 했으나, 35년동안 단 한마디도 딸에게 어떤 말을 들을 수 없음을 슬퍼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심지어 딸은 아버지 장례식 때조차 말없이 그냥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나마 감정은 살아 있어서인지 말 대신 글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그렇게 아버지인 위고가 죽고 나서도 말 없이 살다가 1915년 88살로 독신으로 눈을 감았다. 아델의 이야기는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아델 H[* 아델이 자신이 위고의 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쓴 가명] 이야기'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랑에 집착하다 미쳐가는 [[이자벨 아자니]]의 광기 연기가 일품. 그나마 둘째 아들인 샤를 위고의 후손들이 현재까지도 살아있어 직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 [[기네스북]]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의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여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는데 큼직한 종이에 '''물음표''' 하나만 딸랑 적었다고 한다. 출판사는 역시 세상에서 가장 짧은 답장을 해주었는데 답장에는 '''느낌표''' 하나만 딸랑 있었다고 한다. 위고가 "?(잘 팔립니까?)"라고 보내자 출판사가 "!(네, 잘 팔립니다!)"라고 보낸 이야기로 그 책이 바로 그의 불후의 명작인 [[레 미제라블]]이다.[* 이 일화는 [[명탐정 코난]]에서도 패러디되었다. 선대 [[괴도 키드]]([[쿠로바 도이치]])와 [[쿠도 유사쿠]]가 그대로 써먹었다.] 덧붙여서,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를 쓴 사람은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로 교도소 안에서 썼는데 책으로 나온 [[세계사 편력]]이 바로 이 편지다. 한국에선 3권짜리 책으로 나왔는데, 1500페이지에 달한다. * [[조커]]의 모티브 중 하나인 괭플랭이 등장하는 [[웃는 남자]]도 이 사람 작품이다. *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명언의 당사자. * 작가로 크게 성공해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부유한 삶을 살았음에도, 특이하게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현대로 비유하면 일명 '[[강남 좌파]]',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에 가까운 형태이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것이 젊은 시절에는 오히려 모계의 왕당파 신념을 이어 받은 전형적인 근왕파 보수였던 반면, 오히려 나이를 먹어 가며 결정적으로 1848년 혁명과 프랑스로 몰려든 각지의 망명객들과 교류하며 반대편으로 기울었다. [[레 미제라블]]을 통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며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황제가 될 당시 공화정을 지키겠다며 직접 무기를 들고 대항하기도 했다. 인생 늘그막에는 [[파리 코뮌]]으로 인해 당국의 추적을 받거나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비호해 주고 그들의 사회 재정착을 돕는데 큰 힘을 썼다. 정계에서도 당대 [[프랑스 의회]] 내에서 루이 블랑과 함께 좌파의 거두로 활약했으며, 저 멀리 프랑스의 [[멕시코]] 침공에도 반대해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자 [[프랑스군]]에 대항한 [[베니토 후아레스]]에게 지지를 보냈다. 또 그는 여성의 인권과 평등권을 옹호했는데, 프랑스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은 1944년 4월 21일 [[자유 프랑스]] 임시정부의 포고령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를 앞섰던 비전이다. * 저작권을 비롯한 작가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국제저작권법의 모태가 된 [[베른 협약]]이다. * 한 가지 재미있는 게 후아레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뒤 꼭두각시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 1세]]를 처형할 당시, 빅토르 위고는 막시밀리안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후아레스에게 요청했었다. 막시밀리안 본인은 선량한 인물이었고 [[나폴레옹 3세]]와 멕시코 보수파에게 이용당한 면이 크므로 후아레스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위고가 구명운동을 벌인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후아레즈 본인도 개인적으로는 막시밀리안에게 호감을 가졌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후아레스는 정치적인 이유로 막시밀리아노 1세를 처형한다. * 한편 미국의 일에도 관여하여 노예 해방론자 [[존 브라운]]의 사형을 반대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존 브라운은 그대로 처형당했지만. * [[베트남]]의 신흥종교인 [[까오다이교]]의 성인이기도 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8&aid=0003804053|링크]] 아닌 게 아니라 자칭 진보 인사라는 양반들도 당대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빠져 있던 시대에 위고의 휴머니즘은 식민지 피지배민들에게도 닿아서 베트남, [[북아프리카]] 등의 [[프랑스]] 식민지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했으며, 이들을 프랑스의 하인이 아니라 나름의 문명이 있는 문화 민족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프랑스 제국이란 체제 내에서 지위 향상을 주장했다는 시대적, 입지적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 [[레 미제라블]]에서 동양의 [[퇴비]]를 매우 극찬한 바가 있다. [[장 발장]]이 [[마리우스 퐁메르시|마리우스]]를 업고 파리의 하수구로 달아나는 장면에서 "우리 유럽인들은 [[똥|이 아까운 자원들]]을 그냥 갖다 버리는데, 동양의 농부들은 이것을 활용하여 농사를 지었고, 그 덕분에 아시아의 경작지들은 천지창조 때 만큼이나 젊다!"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후로도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동양식 퇴비를 비위생적이라고 덮어놓고 까던 것에 비하면 매우 선견지명을 가졌던 것이다. *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위고가 집필한 희곡 Le roi s'amuse(환락의 왕)를 읽고 베르디가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것이다. 위고는 처음엔 자신의 작품으로 오페라를 제작한다는 것을 대단히 싫어했지만 정작 완성된 오페라를 감상한 뒤에는 자신의 원작보다 더 훌륭하다는 칭찬을 남겼다. * 강령술을 통해 영혼을 불러와 대화를 나눈 후 작품에 반영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1859159|링크]] 이 부분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7년#s-44|2017년 11월 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다. [[파일:Victor-Hugo4-800x352.png]] * 2017년 6월 30일 [[구글 두들]]에 등장했다. 6월 30일은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완성한 날이다. * 축구선수 [[위고 요리스]]는 빅토르 위고의 이름을 본따서 지은 거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